김치냉장고 한편에서 완전히 언 것도 아니고 생고기도 아닌
어정쩡한 돼지고기 한 덩이를 꺼내고 보니 흡사 그 꼬락서니가
거울을 보듯 자화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금구이로 구워먹기엔 부위가 애매하고
양념으로 하려니 녹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 거추장스러운...
막연한 불안감에 어떻게든 뭐든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냄비에 물을 넣고 팔팔 끓여서는 삶은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넣고
햄 쪼가리와 양파를 썰고는 후추와 고춧가루에 라면스프 하나 뜯어 넣고는
불 위에 올려놓고서는 아무래도 내심 뭔가 불안했는지...
냄비사이를 비집고 김치를 밀어 넣고 간 마늘 한 숟가락을 얹고 만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싱크대 앞을 나와 책상 앞에 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파닥파닥 냄비뚜껑이 갓 잡은 물고기 마냥 요동을 쳐도
애써 모른 척 팽개쳐두다 넘치는 소리가 나서야
못 이기는 듯 자리에 일어나 불을 끈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고는 밀어 닥치는 허기짐에
밥통 앞으로 달려가서는 섣달 그믐날 개밥 퍼 주듯 양재기에 밥을 담고는
입 안 가득 쑤셔 넣으면서도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2010.0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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